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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윤명오 교수] ‘프로정신’ 어디 갔나 에 대한 상세정보
[특별기고- 윤명오 교수] ‘프로정신’ 어디 갔나
작성자 소방안전과 등록일 2014.06.11
[특별기고- 윤명오 교수] ‘프로정신’ 어디 갔나
 
서울시립대학교 도시방재안전연구소 소장(교수) 윤명오
 
서울시립대학교 도시방재안전연구소 소장(교수) 윤명오 기사입력  2014/06/09 [16:25]
 
 
 

프로(pro)라는 말은 프로페셔널의 준말이다. 직업적 전문성을 뜻한다. 훈련과 경험, 재능이나 환경 등을 성숙여건으로 하여 드디어 ‘밥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을 체득하게 된 사람을 그 분야의 프로페셔널이라고 부른다.

▲ 서울시립대 도시방재안전연구소 윤명오 소장(교수)

 ‘독재국가’에서라면 모를까, 세상 어느 나라나 ‘프로’를 기르고 찾아내고 경쟁력을 갖추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 프로를 알아보는 눈 없이 일을 맡기다가는 뻔한 시행착오를 당하기 일쑤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프로’를 배척한다면 달리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즉, 이루고자 하는 일에 대한 본질적인 ‘목표달성 의지’는 없고 그저 명분만 이용해 먹으려는 사심 때문일게다.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는데 영정사진에 관심인들 쓰겠는가. 어떤 조직이든 ‘프로’를 박대한다면 그 조직은 요샛말로 이미 ‘맛이 간’ 것이리라. ‘인사가 만사’라는 말도 정말 쓸만한 사람 잘 골라내어야 그 조직이 산다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 프로를 길러내고 추려내지 못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전쟁에 진다. 그런데, 그 어떤 집단보다도 그 목표가 단순 확실한 ‘국가재난관리조직’의 오늘날은 어떤가. 눈앞에서 손도 못써보고 좌절했다. 세월호의 비통함은 이제 고요하고 냉정한 반성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리고 제대로 ‘변화와 혁신’의 포인트를 잡아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싶다.

첫 번째는 왜 아직도 현장지휘관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가이다. 누가 지휘관이었고 그 사람의 프로 경력이 어떤 사람인지라도 알고 싶다. 심지어는 미국 방재역사 최악의 실패사례인 뉴올리언즈 침몰의 현장 주방위군 지원 사령관까지 우리나라 매스컴이 인터뷰를 해오는 이 시점에, 우리의 지휘관이 누구인지는 아는 사람이 없다. 구난의 핵심으로서 현장에서는 대통령보다 중요한 그 분 커맨더는 누구인가. 그 프로페셔널께서는 어떤 구난경력의 소유자이신가.

두 번째는 지금 이 참담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이미 큰 틀은 입법예고가 되었고 국가구난조직 세부그림을 구상하고 있다는데, 우선 정부조직법에 명시될 큰 밑그림은 누가 어떤 프로페셔널과 논의하여 그린 것인지이다.
 
우리 군대가 새로운 지휘체계와 차세대 전략·전술개념을 구축한다고 하자. 각 분야의 군 프로페셔널들이 모여서 경험과 지식을 쥐어짜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큰 틀은 어떤 ‘경험과 지식’을 반영한 것인가. 그 구상의 주체는 어떤 분야의 프로페셔널인가.

안타까운 사실은 ‘프로’는 ‘프로’를 알아보지만, 아마츄어는 ‘프로’를 몰라본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위원회에 참석하다보면 누가 봐도 경력이 안돼는 ‘위원님’을 만날 때가 있다.
 
가령 ‘교통에너지 심의위’가 있다고 하자. 엊그제 ‘운전면허’를 딴 위원이 그 자격증을 명분으로 위촉되는 것이다. 담당자에게 경위를 물었다. 그 대답은 ‘다양한 전문가를 모시기로 해서…….’이다. 개인사업이라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명인이나 달인을 모셔도 모자랄 판에 참으로 낭만적인 대답을 들어야 했다. ‘전문성’을 그 정도로 여긴다면 그 위원회는 제사상이고 그 의미는 ‘잿밥’에만 있다. 그 조직은 맛이 갔다.

대한민국에는 4만에 육박하는 재난 실전부대가 있다. 다름아닌 ‘소방’이다. 소방의 지휘관들은 긴급구조통제단장으로서 현장구난업무의 최고위 지휘관이 된다. 태풍이든, 유해가스 누출이든, 항공기 폭발이든, 초고층 화재든 초기 출동과 인명구조, 진압의 프로페셔널이다.
 
또한 소방관들에게는 그들을 ‘프로’로 만들기 위한 작지 않은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고 있다. 전쟁빈도가 낮아지고 있어 군대에는 실전경험자가 드물지만, 소방은 몇 년만 근무하면 실전을 걸친다. 그 아수라장의 현장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프로’이거나, ‘프로’가 되어야 하는 조직에 몸담고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곡절일까. 국가재난업무의 더 중요하고 영향력있는 위치에 접근할수록 불안한 현상이 목도되기 시작한다.
 
첫 번째는 책임지고 문제를 푸는 일보다 책임없이 감시권력만 누리는 자리가 만들어지고, 그 자리는 ‘현장의 달인’이 아니라 ‘사무의 달인’이 차지해야 한다는 논리가 바벨탑의 위용과 같이 버티고 있다.
 
두 번째는 요리를 못해서 외면당하는 도산 직전의 식당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판에 명인 주방장을 모시는 방안은 뒷전이고 그저 밥은 못하면서 메뉴판만 만드는 달인 찾아나서기에 열심히라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그 메뉴판이라는 도식은 결국 ‘으름장’이다. 범인 잡는 콜롬보나 병 고치는 허준이 설 땅은 없고 병이 창궐한 마을 이장에게 씌워줄 죄목과 형량을 정하고 그 포도청의 위상을 높이면 될 것 아니냐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프로’는 필요 없고, 고관과 졸개, 무시무시한 몽둥이만 있으면 도둑도, 질병도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는 발상이다. 범죄나 의학 프로그램, 음식만들기 프로그램은 뒷전이고 겁주기 식의, ‘새 판 짜기’라는 모양내기에 몰입하다 보면 전문가에게 바라는 건 가짜금을 만드는 연금술에 다름 아닐 것이다.

‘예방’의 프로는 각 부처이다. 중앙정부가 그 고도의 공학적이고 현장적인 지식을 보유할 수도, 효과적으로 감독할 수도 없다. 아무리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한다. 기술분야의 프로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삼풍백화점 사고 이후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작업복을 입고 현장구조 안전 진단을 나선 일이 있었다. 당시 정부는 ‘확인행정’이자 ‘실천행정’이라고 그 실적을 내세웠으나 현장에서 보면 ‘웃음거리’일 뿐이었다. 점검을 나온 당사자들 조차도 머슥해했다. 프로에게 석 달 걸리는 일을, 공무원 아마추어 팀은 하루만에 끝내고 문제점을 보고해야 했으니……. 요샛말로 공무원 당사자나 현장인원이나 ‘생쇼’에 동원되었을 뿐이었다.
 
대비·대응의 경우는 지방에서 중앙까지 효과적으로 체계화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재난 국면별로 동원되어야 할 자원의 규모와 등급이 다르기 때문이다.
 
‘재난무선망’을 7조 원을 들여서 구현하는 등의 물리적 기능은 사실상 시급한 일이 아니다.
 
그런 통합 없이 치루어낸 사상 최대의 노르망디 작전도 70년 전의 일이다. 세계의 부국 미국이나 일본도 하지 않는 일에 돈 들이지 말고, 제발 실용적인 일에 눈떠야 한다.
 
특히 ‘대응’은 이른바 FEMA의 ‘동일성의 원칙’에 입각해서 그 유형이 다르다 해도 지위 절차는 똑같다는 ‘프로’만이 이해할 수 있는 현장 소양을 정부는 먼저 이해하고 조직 구축에 적용해야 한다.

이번에는 ‘프로’에게 맡겨보자.
그 능력 발휘를 하려면 국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백전노장에게 겸허히 물어봐야 할 때이다. 국가구조를 다시 짠다고 하니 이번에야말로 ‘소방’이 가슴을 펴고 현장에서 피와 땀을 흘릴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가 매우 크다.
 
소방관은 물론이고, 그 가족과, 현장의 슬픔을 겪은 수많은 국민들은 ‘119’가 과거와 같이 그저 재난조직의 명분용 브랜드로 이용당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다. 자신들의 입지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또다시 사고가 닥쳐도 달라질건 없고 그저 그 책임만 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니, 책임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 나라는 또 다시 위로받을 길조차 없는 슬픔과 불신에 휘말린 퇴보를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조직의 이름으로 ‘119 재난안전처’는 어떨까.
‘소방’이란 말은 원래 ‘水火消防’이라 하여 ‘재난관리’의 원조격인 용어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소방’을 ‘불 끄는 조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119’와 ‘소방’을 다르게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이다. ‘대응’이라도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조직과, 재난 전반을 공명정대하게 조사할 수 있는 재난분야의 ‘국과수’ 격인 ‘재난조사원’의 창설도 제안한다. ‘예방’의 회초리보다 우선해서 ‘프로페셔널’을 모아서 ‘실패’를 분석하게 해야 한다. 소 잃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외양간을 제대로 못고치는데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대응중심과 재난조사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프로페셔널리즘이다. 메뉴판 정리하고 홍보를 담당할 기능은 그 다음에 생각해도 좋다. 처음부터 마케팅에만 신경쓰면 정작 상품 자체가 부실해지기 십상이다.

물에 잠긴 세월호는 이제 해체를 앞두고 있다. 팽목항의 절규보다도 유족 앞에서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무릎 꿇고 아이디어를 간청한 해경간부의 초라한 용기를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 정부의 현주소였고, 절대 되풀이해서는 안될 장면이기 때문이다.
 
한여름의 목전에서 벌써부터 그 바다를 가기가 싫은 것은 필자 혼자만의 감상일까. 우리를 일어나게 하는 것은, 처참한 슬픔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화려한 미래상이 아니다.
 
뼈를 깎는 개혁과 쇄신 계획이 담보하여야 할 ‘정당성’이다. 그 정당성을 명분에서 찾지 말자. 촌스럽고, 옷태 안나도 좋으니, 피와 땀과 흙에 쩔은 프로의 제복과 그 정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서울시립대학교 도시방재안전연구소 소장(교수) 윤명오
 

 프로정신의 실종 : 독일경찰의 흑역사


독일 뮌헨에서 올림픽 출전 중인 이스라엘 선수단이 ‘검은9월단’의 테러로 전원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1972년의 일이다. 당시의 사건 전말이 사고 25년이 지나고서 유출되어 공개되었다. 그 실상은 한마디로 ‘개그콘서트’였다. 뮌헨경찰의 대테러작전은 크게 세 번 실패한다.

첫 번째는 인질감시 테러리스트를 기습공격하려다 들킨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은 생방송TV를 보고 있었는데 경찰의 진압작전은 고스란히 생중계되고 있었다.

두 번째는 테러리스트와 인질을 태운 헬기를 공항에 착륙시킨 후 경찰이 저격하는 것을 계획했다. 그러나 헬기조종사가 헬기 출입문을 저격수 쪽으로 향하게 해야 하는 것을 잘못 착각하여 헬기 머리를 그 방향으로 세우는 바람에 저격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세 번째는 테러리스트에게 협상결과로 제공하게 된 비행기에서 시도한 경찰 대테러병력의 매복작전 실패이다. 기내에서 대기중이던 경찰들은 총격전으로 기체가 폭발한다는 주장과 괜찮다는 주장 사이의 격렬한 대립이 일자 거수로 의사 결정을 하기로 하고 ‘다수의 주장’을 받아들여 모두 철수해버렸다. 결국 경찰작전은 다 실패했고 무리하게 테러리스트를 저격하던 중 그들이 던진 수류탄에 이스라엘 선수단은 전원 폭사했다.

독일경찰에 ‘프로’가 없었던 것은 사건 직전 ‘독일의회’가 테러업무를 ‘군’에서 경찰로 ‘이관’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아무 준비 없이 업무를 이관받은 상태에서 출동했다. 한편 이스라엘은 협상거부를 천명하고 독일에 대테러 특공대를 급파했다. 그러나 독일의 법무성은 외국군대의 자국 내 작전을 불허한다는 법을 내세워 그들의 입국을 막았다. 또한 독일경찰은 테러진압대장으로 당시 뮌헨 경찰서장 슈나이더 씨를 임명하였다. 슈나이더 서장은 이전에도 범인과 협상에 실패하여 인질이 사망한 사건의 책임으로 소추를 당했던 경력이 있었다.

결국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인식 없이 ‘국가업무’에서 ‘군’이냐 ‘경찰’이냐로 이른 판단을 선행한 독일의회와 정부는 이 사건을 24년간이나 은폐하였다는 사실과 함께 안이한 아마츄어식 국정운영에 대한 비난을 피할 길 없게 되었다.

독일은 대형 ‘인적재난’이 매우 많다. 민간영역에서 독일의 ‘프로정신’은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공공영역, 특히 재난분야에서 독일은 뒤셀도르프공항 화재, 라임공항 화재, 고속철 탈선 등을 통하여 전혀 다른 모습, 즉, 프로페셔널리즘보다 ‘형식논리’에만 집착하는 사변적인 행정의 패착과 오류를 많이 범하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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